🧊 시뮬레이터 훈련은 해봤지, 그런데 실제라면?
항공기 조종사라면 누구나 시뮬레이터에서 비상 상황을 수십 번 이상 훈련했을 것이다. Engine Fire, Smoke, Dual ADR, Emergency Descent 등 대부분의 절차를 정해진 순서대로 완수하면 OK 사인과 함께 훈련은 종료된다. 하지만 그 절차가 실제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시뮬레이터에선 절대 재현할 수 없는 ‘현실의 감각적 충격’**이 조종사의 인지와 판단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훈련의 맹점을 짚어본다.
1. 🧨 급감압과 Ram Air On – 말이 쉽지 진짜로 해봐라
Emergency Descent 절차에서 RAM AIR ON은 마치 단순한 스위치처럼 다뤄진다. 실제 훈련에서도 ECAM 절차에 따라 "Cabin Altitude Uncontrolled"가 뜨면 RAM AIR를 열고, Cabin crew notified 후 descent. 하지만 실제 30000ft 상공에서 Cabin이 급감압되고 RAM AIR를 여는 순간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 외부 온도는 영하 40도 이하, Cabin 내부는 10초 안에 냉장고처럼 바뀐다.
- 공기 밀도는 낮고 귀가 먹먹하며, 소통이 어렵다.
- 산소마스크는 코와 입을 압박하고, 말소리는 불분명해진다.
- 조종사는 서류도 못 넘기고, 손이 얼어 Flight Control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시뮬레이터에서는 이런 물리적 불편함과 생리적 스트레스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RAM AIR ON 후 절차가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현실에선 진짜로 숨쉬기조차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2. 🌫️ 스모크 발생 – 눈도 아프고 숨도 막힌다
Cockpit Smoke/Fumes 절차에서 조종사는 “OXY MASK – ON, 100%”를 외우듯 진행한다. 하지만 실제 연기가 조종석 안을 채우고,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며, 그 연기가 매캐하고 자극적이며, 실제 눈을 따갑게 하고 기침을 유도하는 유해 물질이라면? 마스크 착용 전 몇 초 사이에도 인지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 시야 확보는 거의 불가능해져 overhead panel 식별이 어려워진다.
- 손이 연기 속에서 패널을 찾고도 정확한 스위치를 누르지 못한다.
- 마스크 착용 이후에도 마이크 불량, PAX oxygen release 오작동, HOT AIR FAULT 등 혼선이 이어질 수 있다.
- 시뮬레이터의 무색무취한 ‘visual smoke’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 연기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심리적 압박과 촉각/시각의 왜곡을 함께 가져온다. 절차만 안다고 대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3. 🧠 위기 상황의 판단력 저하 – 시뮬레이터에선 절대 안 느껴짐
시뮬레이터에서는 “잘 안 되면 다시 하면 되지”라는 무의식이 있다. 실수를 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기내에서 조종석 경고음이 울릴 때는, 내가 대응을 잘못하면 정말로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조종사의 이성적 판단을 뒤흔든다.
- 버튼을 누르기 전에 머리가 하얘진다.
- 절차가 기억나도 손이 안 간다.
- “이게 진짜냐?”는 부정, 무시, 망설임이 빠르게 올라온다.
- 조종간을 잡는 손에도 떨림이 생긴다.
심지어 단순한 GPWS 경고음조차 실제에선 갑작스럽고 압박감 있게 들린다. 시뮬레이터에서는 Volume도 제한되어 있고, 이어폰 착용 상태라 소음이 덜한데 반해, 실제 기내에서는 ‘감각적 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다.
4. 🦵 기내 물리 환경 – 시뮬레이터에는 없는 진짜 상황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중엔, 조종석 외부 요소도 영향을 미친다.
- 기류가 심해 비상구 앞 승객이 부상
- Cabin crew가 interphone 연결에 실패하거나 쓰러짐
- 비상시 착륙 후, 도어를 열지 못하거나 PAX들이 탈출을 거부
- 마이크나 헤드셋 연결이 느슨해져 외부와 연락 단절
이러한 ‘현장 변수’는 시뮬레이터에서는 절대 재현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항공사에서는 Cabin Simulator가 따로 있어도 Cockpit과의 통합 연동은 불가능하다.
✅ 결론 – 절차 외에도 감각과 정신을 훈련하라
시뮬레이터 훈련은 절차와 역할에 대한 훈련이다. 반면 실제 비상 상황에서는 감각·심리·생존본능이 결합된 복합적 위기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조종사는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 “훈련에서는 절차를 외우고, 실전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한다.”
- “불쾌한 감각에 대비하지 않으면, 절차는 무의미하다.”
- “내가 겪을 현실은 더 시끄럽고, 더 어둡고, 더 매캐하다.”
시뮬레이터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현실은 더 힘들 것이라는 걸, 절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조종사 스스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훈련의 완성이다.